220526 롤링스톤 <블랙핑크 제니> 인터뷰 번역
롤링스톤 화보 촬영 중간의 쉬는 시간동안, 제니가 YG의 스태프들과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여러번 볼 수 있었다.
2016년 블랙핑크가 데뷔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스타일리스트 박민희씨는 "그녀와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한다"며, "그녀는 매우 따뜻하다" 라고 말한다.
블랙핑크의 메인 래퍼인 제니는 2010년 YG에 블랙핑크 멤버들 중 처음으로 입사하기전, 한국 서울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자랐다.
제니는 2018년 싱글 "SOLO"로 블랙핑크 중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매한 멤버이기도 하다.
"SOLO"는 미국 빌보드 월드 디지털송 차트를 휩쓸었고, 유튜브 조회수는 8억뷰가 넘는다.
블랙핑크에 리더는 없지만, 때때로 제니가 그 역할을 하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침착하고, 그룹을 대신해서 어려운 질문들을 대답한다.
지난 4월의 한 오후, 최소한의 메이크업과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염색하고 YG 사옥의 빈 댄스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제니는 친근하고 솔직하다.
그녀는 곧 코첼라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LA 플래그쉽 스토어에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그녀는 샤넬의 엠버서더이자, 젠틀몬스터의 엠버서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는 한국어과 영어를 섞어가며 어떻게 스트레스를 극복하는지 부터 블랙핑크에서 그녀의 과학적인 두뇌를 사용하는지까지 모든것에 대해 털어놓는다.
Q.
사람들은 늘 유명인에 대해서 루머를 빠르게 생성한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렸을때,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너무 소심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다지 밝고 에너지 넘치지 못했다.
나는 "안녕"이라고 말하는것조차도 부끄러워했다.
요즘 나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다는걸 깨닳았고, 달라졌다.
내가 연습생일때, "왜 제니는 항상 화나보여?" 라는 말을 종종 들었고, 그 때는 그런 말들이 나를 상처받게했다.
난 화나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할 뿐이다.
이젠 그런말들에 상처받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다음번에는 더 노력하도록 한다.
Q.
블랙핑크는 스웩이 넘치는 파워풀한 걸그룹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당신이 알고 사랑하는 블랙핑크는 어떤가?
우리는 우리 또래의 다른 여자들과 다를바가 없다.
물론, 우리가 가진 영향력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다음 컴백때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만, 보통은 우리의 고양이들, 강아지들,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예쁜 장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사랑하는건 우리의 일, 멋진것들, 그리고 음악이다.
이런것들이 우리의 인간적이고 소녀스러운 면과 블랙핑크로써의 면들이 균형있게 공존할 수 있게 한다.
Q.
당신은 2018년 "SOLO"로 솔로 앨범을 발매한 첫 멤버이다.
블랙핑크 밖에서의 당신의 음악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나는 아직 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보컬도 좋아하고, 랩, 댄스도 좋아한다.
난 하나의 곡에 이 모든것들을 섞어낼 수 있다.
나에겐 그런 다양성이 있다.
블랙핑크 내에서의 제니의 이미지는 한정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본 제니는 연습이었다.
Q.
블랙핑크 버전의 제니는 누구인가?
정말 강한 사람이다.
단단한 사람이다.
공격적이고, 물론 좋은 의미로.
내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아서 블랙핑크의 제니는 나에게 캐릭터 같다.
나는 나중에 솔로곡으로 내 실제 개성을 음악에 담아낼 수 있길 바란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보컬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연습생 시절에, R&B와 좀더 소울풀한 노래들을 종종 연습했다.
부드럽고, 조용한 노래도 좋아한다.
나는 많은 다른 것들을 다 시도해보고싶다.
Q.
제니의 어렸을적은 어땠나?
어떤 꿈을 갖고 있었나?
어떤 특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은 꾼적이 없다.
그냥 뭔가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지 않을것 같다는 것만 알고있었다.
난 어렸을떄부터 색깔과 옷입는것을 좋아했다.
"나는 스타가 될거야! 가수가 될거야!" 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나는 많은 다른것들을 좋아한다는걸 깨닳았다.
나는 내 꿈을 빨리 찾고 싶었다.
다행히도, 우리 엄마는 굉장히 힘이 되어줬다.
Q. YG에 들어오기전에 가족에게서부터 떨어져서 혼자 오클랜드에서 5년간 공부했다. 쉽지 않았을것 같은데? 사실 그때 나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나는 말그대로 단 하루만에 적응해냈다. 유학간지 이틀만에 엄마와 통화했는데 "괜찮아? 나 보고싶어?" 라고 묻는 말에 "엄마, 나 이제 가야해. 트램펄린 뛰어야돼." 하고 답했다. 돌아보면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나를 좀더 거칠게 만들었지만, 그때의 나는 "나는 혼자이고 난 이걸 버텨내야해" 하고 매일 생각하지는 않았다. 10살때까지 한국에서 살때는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녔다. 한국의 교육은 많이 다르다. 야외에서 하는 활동이 많이 없다. 그리고 내가 뉴질랜드에 갔을때 나는 매일매일을 뛰어놀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건 슬펐지만, 거기에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Q.
내가 가진 너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하는게 좋다.
나는 좀더 클리셰적인, 외국에 사는 외로운 아이를 생각했다.
아니, 나는 "고마워요! 엄마!" 라고 생각했다.
난 학교에 가는것을 좋아했다.
필기를 다시 쓰고, 공책을 정리하고, 여러가지 색깔들로 노트필기를 하는걸 정말 좋아했다.
사실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라 정리하는걸 좋아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연필로 필기를 하고, 나중에 집에와서 색깔펜들로 다시 정리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과 수학이었다.
공식들을 배우고 데이터를 집어넣는걸 좋아했는데, 그건 아마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기에 영어수업을 좀더 무서워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은 공식을 외우고 나면 한국어처럼 그냥 사용할 수 있다.
Q.
이 정리된, 과학적인 두뇌를 블랙핑크에서도 사용하나?
물론이다.
만약 우리를 그냥 냅두면 우리는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다.
그냥 논다.
우리를 방안에 가둬놓으면 노래를 틀고 춤출거다.
하지만 나는 데드라인을 계속 생각하고 우리가 오늘까지 해야할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멤버들한테 이야기해준다.
Q.
블랙핑크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테디 박이 아마도 가장 음악 창작과정에 있어서 중심적인 인물일것 같은데, 그는 어떤 프로듀서인가?
오빠는 우리가 아티스트로써, 인간으로써 가져야할 생각들을 심어준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디어들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테디는 갑자기 전화해서는 "제니야, 스텝업(발전)해야지" 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 맞아" 그리고 하던일을 멈추고 YG 사무실에 가거나 춤을 배우곤 한다.
테디는 그냥 전화만 했을 뿐인데, 나는 "오마이갓" 하며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긴장감이 블랙핑크에 필요한 긴장감인것 같다.
Q.
제니는 테디는 뼛속부터 힙합이고 너는 그걸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나에겐, 힙합은 쿨한 정신이다.
바이브, 스웩,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블랙핑크의 힙합은 세계가 그 전에 본 어떤것과는 다르다.
우리, 네명의 소녀들은 각자 다른 배경에서 온 20대들이고,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를 쓰며 힙합 베이스를 대중음악과 섞는다.
아마도 "진짜 힙합"을 하는 미국의 진짜 멋진 랩퍼들이 보면 애들 장난처럼 보이겠지.
우리의 힙합은 반항적인 타입은 아니지만 우리는 뭔가 멋진걸 하고 있다.
이게 무슨 힙합이야?
나도 몰라!
그냥 멋있잖아!
Q.
좋아하는 힙합 그룹이 있나?
브록햄튼을 정말 좋아한다.
서로 다른 파트를 가진 젊은 남자들이 음악을 만드는걸 보고 공감할 수 있었다.
Q.
요즘 제일 많이 고민하는 것은?
요즘은, 내 생각에,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다.
지난 월드투어 (2020년)이 끝났을때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아팠는데, 팬들에게 이런걸 자세하게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팬분들이 걱정해서 나는 애매하게 말했다.
하지만 데뷔하고 3년동안 우리는 한번도 쉬지 않고 일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우리는 제대로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런걸 3-4년 동안 하다가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는 1년 반동안 진행했는데, 1년 반 동안 나는 집이 없었다.
뭔갈 만지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였고, 면역력이 너무 심하게 떨어져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투어를 돌아야했다.
투어가 끝났을때 집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내 자신을 케어해야하는지 배울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매우 섬세한 사람이다.
운동을 할때 근육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이거 아파, 왜이러지?" 한다.
요즘에 우리는 컴백과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매일매일 "좋아, 앞으로 바쁠 2년간을 위해 나를 어떻게 준비시켜야할까?" 하고 생각한다.
Q.
도움을 요청해본적은 있나?
사람들에게 요청했었다.
그전에는 친구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들었고, 이야기했고, 배웠다.
주위에 가족이 있다는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생각엔 건강하게 있는게 제일 중요한것 같다.
내 약점을 알고, 내가 어떤것에 알러지가 있는지, 어떤걸 먹으면 안되는지.
난 이런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부한다.
그래서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많이 만났고 정신건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지금까진, 몸이 괜찮으면 더 행복하고 건강한것 같다.
나는 명상하고, 요가하고 필라테스도 한다.
그리고 주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는것, 그리고 반려동물들도.
Q.
지금은 가족과 같이 사나?
그렇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TMI 가 될수 있지만 나는 해외에서 살았고, 그러고나서 10년은 YG 기숙사에서 살았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산적이 거의 없다.
엄마와 나는 아주 가까운 관계를 갖고있다, 거의 친자매처럼.
몇년전에 나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블랙핑크가 기숙사에 나올때 딱 그때쯤에.
Q.
와, 네 이전의 삶과는 다른 큰 변화이다.
존경한다!
나는 내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다.
어... 근데 나 곧 이사갈꺼야.
나도 할만큼했어, 엄마! (웃음)
엄마도 이제 독립하라고 말했다 (웃음).
엄마와 같이 있는 이런시간들은 분명 필요했고, 좋은 결정이었지만, 이제는 나가서 독립할 준비가 되었다.
Q.
블랙핑크가 없는 미래를 생각해본적이 있나?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블랙핑크는 절대 끝나지 않을것이다.
내가 뭘하든 나는 늘 블랙핑크일것이다.
우리가 70살이 되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도, 나는 늘 블랙핑크일 것 같다.
약속한다.
나에게 블랙핑크란, 우리가 음악을 하던 안하든 그 이상의 것이다.
내 가족의 일부이다.
가족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가 바쁘면, 더 자주 보고, 그렇지 않으면 - 그래도 우린 여전히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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