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는 블랙핑크의 메인 래퍼다.
그동안 화려한 랩핑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 공식을 깼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장했다.
그녀의 모든 목소리를 담았다.
90년대부터 2000년대의 알앤비, 팝, 힙합을 아우른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
'루비' 속 제니는 소녀 같다가도 도발적이고, 연약하다가도 강인하다.
가장 자신감 넘치는 모습(젠, 라이크 제니)부터 가장 깊숙한 내면(필터, 스타라이트)까지, 극과 극의 매력을 담았다.
제니 측은 '디스패치'에 "곡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얼마나 수정, 수정, 수정을 반복했는지 모른다"며 "1년간 자신을 채찍질하며 만든 앨범"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발매 직전까지도 수정에 매달렸다.
첫 솔로 정규앨범 '루비'(Ruby)는 그렇게 나왔다.
원석을 깎아 연마해 루비가 되듯, 제니는 연단의 과정을 거쳐 '루비'를 내놓았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만트라', 1월 '러브 행오버', 2월 '엑스트라L', 그리고 3월 '루비'까지.
반년에 걸쳐 '루비'를 선보였다.
'디스패치'가 그녀의 여정을 돌아봤다.
제니는 (래퍼의) 한계를 깨고, (K팝의) 경계를 넘고, 제니만의 세계를 완성했다.
◆ ZEN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고, 모든 사람은 단지 연극을 할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앨범 콘셉트 구상을 시작했다.
남들의 시선은 접어두고, 제니가 원하는 대로 만들겠다는 것.
가장 핵심이 되는 곡은 '젠'(ZEN).
이 앨범에서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곡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앨범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제니는 한 인터뷰에서 "'젠' 없이 앨범을 보면 '다양한 걸 좋아하나보다' 하실 텐데, '젠'을 먼저 듣고 보면 제가 어디서 (이 앨범을) 시작하려고 하는지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텐션으로 압도하는 곡이다.
웅장한 드럼 비트와 왜곡되는 듯한 전자음(디스토션)이 웅장함을 만들었다.
제니의 카리스마로 거대한 존재감을 표현했다.
제니가 작사, 작곡했다.
곡의 가사부터 소리까지 정교하다.
타격감 있는 리듬, 묵직한 베이스로 어두운 분위기를 냈다.
드럼이나 신스는 단단하고 날카롭게 다뤘다.
그는 '젠'을 만들기 위해 삼국시대부터 역사를 다시 공부했다.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에서 힌트를 얻었다.
금제 왕관을 모티브로 옷과 날개 등을 만들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여러 제니의 모습이 겹쳐서 나온다.
마지막 가사 '하나는 둘이 될 수 없어'(Can't be two of one)처럼, 유일무이한 존재를 표현했다.
하나의 아트팝을 선보였다.
보아야 들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제니는 이번 앨범을 "저의 성장과 그동안의 시간을 증명해 준다"고 자신했다.
◆ Like 제니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는 오프닝 곡으로 봐도 무방하다.
제니가 작사, 작곡했다.
지코도 작곡으로 힘을 보탰다.
이 곡에 유일하게 한국어 가사를 썼다.
특별한 화성 없이, 2분 4초간 다이내믹을 보여준다.
펑크한 비트가 특징이다.
둔탁한 베이스와 킥 드럼으로 타격감을 강조했다.
보컬을 잘게 쪼개서 반복하며 중독적인 리듬을 만들었다.
속삭이며 '후렴으로 데려갈게'(Don't bore us take you to the chorus)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부터 텐션이 시작된다.
이 프레이즈 뒤에 바로 클라이맥스를 붙였다.
2000년대 초반에 자주 쓰던 방식.
가사에는 제니의 아이덴티티를 녹였다.
'누가 제니처럼 사람들을 빠지게 할 수 있어?'(Who else got 'em obsessed like Jennie)라며 독보적인 존재를 정의했다.
'그들은 절대 나처럼 될 수 없어'(Cause they can never ever be), '난 다 해냈고, 내 이름을 새겼어'(I've slayed it, and I graved it)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곡은 결국, 모두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다.
제니는 한 인터뷰에서 "제니가 포커스가 아니"라며 "'Like 누군가'라는 개념이 더 크다"고 말했다.
◆ Jennie Ruby Jane
'라이크 제니'가 이번 앨범의 에센셜 같은 곡이라면, 수록곡에서는 진짜 제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노래하는 제니보다, '제니 루비 제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다.
곡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
'루비'의 15곡 전곡 모두 제니의 목소리가 다르다.
곡마다 보컬 톤, 악기 구성, 편곡 스타일 등을 다르게 해석했다.
보컬리스트의 정체성을 새겼다.
'스타라이트'(Starlight), '트윈'(twin)에서는 감정을 쏟아낸다.
제니가 멜로디를 짜고 가사를 붙였다.
멜로디 라인이 훌륭하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시너지가 돋보였다.
'핸들바스'(Handlebars)와 '러브 행오버'에서는 소울풀한 사랑 노래를 선보였다.
두아 리파, 도미닉 파이크와 느긋한 그루브를 만들었다.
'만트라', '엑스트라L'(ExtraL)로는 대중적인 팝을 선보인다.
'F.T.S.'에서는 반항기 넘치는 제니를 담았다.
감정의 해방을 강조했다.
90년대 사운드도 차용했다.
'댐 라이트'(Damn Right)에서는 슬로우 잼을, '위드 더 아이이'(with the IE)로는 90년대 올드스쿨 사운드를 선보인다.
15곡으로 극과 극의 매력을 선보였다.
팝디바였다가, 피아노 앞에 앉아 홀로 발라드를 부르기도 한다.
제니는 "저는 극단적인 느낌들에서 밸런스를 잡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제니의 세계
루비의 뜻대로, 음악의 새로운 막을 올렸다.
제니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건, 자기 자신이다.
새롭고, 미세한 감정을 경험하고 배웠다.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루비'가 더욱 의미 있는 건, 제니가 YG를 떠나 홀로서기 한 앨범이라는 것.
제니가 주도권을 쥐고 비주얼과 음악을 모두 컨트롤한 결과물이다.
김도헌 평론가는 "콘셉트도, 퍼포먼스도, 제니가 이 앨범 전체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K팝이 팝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기록이 말해준다.
최초,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루비' 초동 판매량은 66만 1,130장.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중 가장 높은 기록이다.
미국 '빌보드 200' 7위에 올랐다.
제니가 솔로로 세운 최고 성적.
'핫 100' 차트에는 '라이크 제니'(83위), '핸들바스(80위), '엑스트라L'(99위), 3곡을 동시에 올렸다.
이 역시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다.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에는 3위로 진입했다.
K팝 여성 솔로 가수 최고 기록.
싱글 차트에서는 '라이크 제니' 36위, '핸들바스' 41위, '엑스트라L' 66위로 진입했다.
김 평론가는 "제니 스스로 자아를 잘 탐구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적인 작품이 나온 것"이라며 "제니라는 음악가를 다시 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제니는 단순한 퍼포머를 넘어서서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래퍼 그 이상의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그래서 '루비'는, 존재만으로 의미있다.
제니처럼.
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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