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사진제공=JTBC
2021년 방송가 드라마를 돌아보면 하나의 큰 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돌 가수의 팬덤 못지않게 드라마의 팬덤도 드라마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줬던 두 개의 사례가 연 초에 방송된 SBS '조선구마사'와 연말에 방송된 JTBC '설강화'였다.
두 작품이 일부 시청자들의 심기를 거스른 방식과 시청자들의 대응 방식은 비슷했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초기 왕과 국경의 문화 등 고증에 있어 지나친 상상으로 대중의 허용범위를 넘었으며, '설강화' 역시 1987년이라는 '민주화 운동'과 정확하게 치환되는 시기에 간첩이 대학가에 들어온다는 설정으로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다.
결국 두 작품에 일부 시청자들은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뒀고 협찬사,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 그리고 청와대 국민청원 등으로 목소리를 냈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방송 2회 만에 방송사, 제작사, 광고주 심지어 배우들도 백기를 들었다.
이후 작품들도 특히 과거사를 다루는 작품들에 있어서는 내부적으로 검토를 더욱 세세하게 하는 풍토의 변화도 일으켰다.
같은 논란이 '설강화'에도 일어났다.
하지만 제작사와 방송사는 한 주에 한 회를 더 방송하는 금, 토, 일 '3일 연속 편성'이라는 초강수를 꺼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설강화'와 관련한 역사왜곡 논란은 많이 사그라졌다.
오히려 그 논란을 일으킨 시청자들에 대해 특정한 의도가 있지 않았냐는 또 다른 마녀사냥이 일어날 지경이다.
여러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초반 '설강화'에 일어났던 논란의 요소를 따지면 현재 극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 많았다는 게 실질적인 결론이다.
'설강화'를 보이콧하려 했던 시청자들은 지난해 초 새어나온 일부 시놉시스를 근거로 '1987년 간첩이 대학생으로 위장해 대학가로 잠입했다'는 설정과 '간첩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안기부(안전기획부)가 미화됐다'는 주장을 들었다.
일단 주인공 임수호(정해인)가 간첩인 것은 극을 통해 드러났고 그가 대학생으로 위장해 기숙사 '방팅'에도 참여하고 실제 여주인공 은영로(지수)도 그를 독일에서 온 대학생으로 알았다는 것은 팩트다.
하지만 뒤에 두 주장은 극과는 방향이 달랐다.
극은 JTBC가 3회 연속 편성을 시작한 4회 무렵부터 갑자기 성격을 바꿨다.
원래 간첩과 대학생 등 처지를 초월한 두 남녀의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로 알려져 있었지만 수호가 간첩단과 함께 다시 무장한 채 기숙사를 찾은 후에는 극중 한국 정부의 정보국과 대치하는 인질극의 요소를 더욱 많이 보였다.
따라서 간첩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여지는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안기부가 미화됐다는 설정도 극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는 북한 고위급과 접선해 대선정국 여당의 입지를 유리하게 하려는 공작정치에 몰두하고 있고, 그와 대립하는 여당 사무총장 남태일(박성웅)은 여권의 실세로서 권력에만 집착하고 있다.
둘의 이전투구를 놓고 보이는 것은 국가의 보위나 국민의 안위보다는 제 밥그릇의 수호인 듯 보인다.
안기부 요원들의 모습 역시 명령을 어기고 단독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안위에만 신경쓰는 모습을 강조해 미화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드라마가 대중의 정서에 반하는 기획을 했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방송의 '주권자'인 시청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가 빈약한 근거를 기반으로 창작자를 윽박지르는 형태로 비화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대응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해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등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통해 세계적으로 큰 울림을 줬던 한국 드라마의 창작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단지 간첩이 1987년에 등장하는 설정만으로 방송을 멈춰야 할 정도의 타격을 받는다면 과거 개봉한 영화 '쉬리'나 '간첩 리철진' 그리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의 작품들은 이적행위로 국가보안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극은 초반 설정이 아니라 전개를 봐야하고 그 안에서 작가나 연출자가 자세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한다.
이러한 여유와 포용이 우리 드라마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조선구마사'의 경우에는 조선 초기 임금이 친족을 학살하고, 조선 국경지역의 문화가 중국풍이 되는 등 명백한 오류를 통한 지탄이었지만 '설강화'는 그 전개에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전개를 따라가며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설강화'의 작품성 등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러한 창작자의 상상력에 부담이 가중될수록 우리는 나중에 무릎을 칠만한 재기 넘치는 시나리오를 보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이는 마치 벼룩을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행동과도 같다.
창작자 역시 대중의 정서를 고려하고, 창작을 이유로 넘어가는 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고민해봐야 한다.
하지만 수요자들 역시 논리적 비약과 추측만으로 작품을 섣불리 평가해선 곤란하다.
전세계를 누비는 'K-드라마'가 더욱 성장하라면 창작자와 수요자 모두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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