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법(패러독스), 반어법(아이러니), 모순어법(옥시모론)은 기자들도 자주 헷갈리는 표현 방식이다.
역설법은 보기엔 말이 안 되지만 한번 더 생각하면 얘기가 되는 기법이다.
반어법은 원래 뜻과 반대되는 말을 해 의미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모순어법은 반대되는 어휘를 결합해 독특한 효과를 노리는 기법으로 형용모순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보면 이런 표현 방식이 쉽게 와닿는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 나오는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역설법으로 표현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있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반어법적 방식이다.
이순신 장군의 ‘죽으려고 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모순어법으로 구국의 정신을 극대화했다.
2016년 데뷔한 그룹 블랙핑크의 이름 역시 모순어법이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밝고 예쁜 색으로 표현되는 ‘핑크’를 어둡고 음습한 ‘블랙’으로 부정한 이름이라고 소개했다.
예쁘게만 보지 말라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블랙핑크는 어두운 힙합의 블랙과 밝고 귀여운 댄스 팝의 핑크가 조화를 이룬 노래를 즐겨 부른다.
노랫말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노래를 부르지만, 어둡고 절망적인 노랫말과 밝고 행복한 노랫말을 다양한 음악 스타일에 맞춰 들려준다.
블랙핑크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핑크 베놈’ 또한 자신들의 이름처럼 형용모순이다.
이들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노래를 ‘사랑스러운’(핑크)과 ‘치명적인 독’(베놈)으로 소개했다.
“반전이 우리의 매력이어서 반전을 앞세워 ‘사랑스러운 독’으로 표현했다”(제니), “가사에는 ‘잔인할 만큼 아름다운’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상반되는 블랙핑크만의 두가지 매력을 담아낸 곡”(로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형용모순’ 블랙핑크는 걸크러시 이미지와 남성팬들에게 소구하는 성적 매력 양쪽을 다 잡는 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공개 일주일여 만에 2억회의 조회수를 넘기며, 전세계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 최초·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천천히 스며드는 독처럼 블랙핑크는 전세계 많은 이를 케이(K)팝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오는 16일 발매될 앨범이 또 어떤 기록을 쓸지 주목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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